생몰년:
1728-1791
개요:
최광벽(1728~179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주로 문관으로 봉직한 인물이다.
활동시기와 활동배경: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 조선 후기 사회에서 과거에 급제해 예조판서와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며 관직과 학문 활동을 병행한 문신이자 한문학자였다.
사상 및 철학: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한문학 연구와 시·문 창작을 통해 유교적 도덕과 학문적 수양을 중시하였다.
이칭:
공헌 이우정
참고정보:
贈禮曹判書行江原道觀察使認齋崔公神道碑銘 ([刊寫者未詳]) 正祖 13(1789)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생애:
최광벽은 1728년 조선 시대 중기에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조선 후기의 번성기와 침체기를 함께 겪으며 시대의 큰 변화 속에서 펼쳐졌다. 젊은 시절부터 유학을 공부한 그는 성리학의 이론을 깊이 탐구하였고 학문적 열정과 탁월한 재능으로 그 시대 학자들 사이에서 일찍이 인정받았다. 1750년대에 들어서면서 최광벽은 성균관에 입학 성리학의 권위를 높이는 논문을 발표하여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학문은 백성의 삶을 개선하는 현실적 문제 해결에도 적용되었으며 이는 곧바로 조정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국정의 개입도 불사하여 당시 개선이 시급했던 농업 정책을 입안하는 데 기여하였다. 한때 역모 사건에 연루될 위험도 있었으나 지혜롭게 위기를 넘겼다. 179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조선 후기 학문과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표업적:
설비관에서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한문학 연구와 시·문 창작으로 유교 사상을 세차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