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1825-1905
개요:
서찬규(徐讚奎 1825년부터 1905년까지)는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활동한 교육자이자 문인 작가로 후학 양성과 문학 창작에 힘쓴 인물이다.
활동시기와 활동배경:
서찬규는 19세기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로 서당을 열어 향촌 사회의 학문 전통과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상 및 철학:
그는 한문학과 성리학을 바탕으로 학문적 엄정성과 실천적 덕행을 중시하는 교육관을 실천하였다.
이칭:
경양 임재 臨
참고정보:
임재일기 (한국국학진흥원) 2010
생애:
서찬규는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 초기까지를 살았던 인물로 1825년에 한양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여 정약용의 학문을 깊이 있게 배웠으며 성균관에서 탁월한 성적으로 유학을 마쳤다. 당시 조선은 서구 열강과의 교류가 본격화되는 상황으로 서찬규는 이를 기회삼아 외국어를 독학하고 개화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후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참여하여 새로운 문물과 제도를 연구했다. 귀국 후 교육 개혁에 앞장서 근대 학교 설립에 기여했으며 특히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조국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늑약 체결 시 불행을 감지하고 조국의 미래를 염려하며 8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업적:
경상도 지역에서 서당을 열어 향촌 사회의 학문 전통과 후학 양성에 기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