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1763년 ~ 1833년
개요:
오희상은 1763년에 태어나 1833년에 세상을 떠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문관으로서 관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활동시기와 활동배경: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의 혼란 속에서 한국사의 체계적 연구와 민족사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상 및 철학:
그는 한국사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엄밀한 사료 검토를 통한 학문적 연구 방법을 중시하였다.
이칭:
노주
참고정보:
老洲先生文集 (景仁文化社)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생애:
오희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실학자였다. 1763년 경기도의 한 소박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보여주어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며 15세에 성균관에 입학해 유학 경전을 깊이 연구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쇠퇴하는 양반문화 속에서 변화의 바람이 일렁이고 있었으나 오희상은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실학적 사고를 발전시켰다. 그는 농업의 혁신과 상공업의 육성을 주장하며 새로운 경작 기법과 효율적인 운송 수단 개발에 힘썼다. 이러한 연구는 이후 한국 산업화의 기틀로 평가받는다. 또한 백성의 삶을 보듬고자 노력하며 자작시를 통해 민생을 노래하기도 했다. 병약한 체질에도 불구하고 70세까지 지체 높은 인물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철학을 이어나간 오희상은 1833년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상은 많은 후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며 이어졌다.
대표업적:
한국사의 체계적 연구와 민족사 인식 확립 한국사 주체적 해석과 민족 정체성 강조
